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 경상남도 거창군 -
경남 거창의 거창신씨 집성촌 황산마을은 경사가 조금 있는 위천면 평지에 자리한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수백 년 전 지어진 한옥들이 들어차 고풍이 넘치고, 운치 있는 옛 돌담을 감상하는 맛도 일품입니다. 게다가, 누각 처마 밑으로 펼쳐진 수승대를 보면 은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풍류시인이 될 것 같습니다. 아기자기한 담벼락을 따라가며 듣는 이야기에 하루가 부족할 판이라 이곳은 한옥 민박체험 시설도 잘 갖추고 있습니다. ‘황산마을에 머물며 예스러움을 엿들어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방문객을 먼저 반기는 것은 바로 담장이다. 흙과 돌 만든 토석담인데, 이때 담장 아랫부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신기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된다.
“여기를 봐! 흙 메우기 없이 돌만 얹어놓았어. 태풍이라도 오면 무너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 비가 많은 거창의 지리적 특성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아~ 한번씩 마당을 물바다로 바꾸는 비가 빠져나갈 일종의 배수구인 셈이로구나.” “맞아. 이걸 메쌓기라고 부르지.”
담장은 대체로 무늬 없이 담백하다. 하지만 택호가 대과댁인 고가의 담장을 보면 유독 장식이 가미되어 눈길이 간다.
“이 마을의 첫인상은 단언컨대 실망스러워. 1㎞가 넘는 이 길이에서 토석담 또한 등록문화재라지만 꽤 단조롭고 말이지.”
“수키와와 암키와로 꽃잎을 표현한 이곳 꽃무늬 담장을 봐봐. 문화해설사 말로는, 과거 전 문화재청장이 이 마을을 돌다 꽃무늬를 발견하곤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지.”
황산마을은 담장 높이는 대체로 낮은 편이다.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도시 담벼락 대신 ‘너와 나의 어울림’을 실천해온 것이다.
“이 담벼락만 봐도, 공간을 구획하고 최소한의 사생활만 보호할 뿐 단절을 철저히 피한 구조야. 단순히 고택들이 모인 마을이 아니라 친족 공동체로 엮여 있기에 가능하겠지?”
“옆집에 아재가 살고, 그 뒷집에 조카가 있어 애써 차단용 울타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겠지. 손 시린 바람에도 이 길목에서만큼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니?”
지금은 민박촌으로 바뀌어 언제든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황산마을은 1540년 요수 신권 선생이 터를 잡은 거창 신(愼)씨의 집성촌이다.
“어림잡아 한옥 수가 60~70채쯤 되겠어.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당시 건립된 집들이 많아.”
“하지만 여기가 18세기 중엽 황고 신수이 선생이 입향하면서 번성해온 집성촌이라는 사실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그래서 그런가, 이 마을의 역사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져.”
특히 가장 잘 보존된 집 역시도 신씨 고가가 꼽힌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이 고택은 500여 년 역사 외에도 눈이 휘둥글해질 만한 자랑거리가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등 이곳 목조건축물을 들여다보면 집 주인의 부와 권위, 경제력을 이해하게 되지.”
“맞아. 하지만 이 집의 숨은 내력은 따로 알아봐야 해. 여기서 13대 요수 신권의 손자 신당이 6형제를 두었는데, 그 후손들 가운데 절반이 거물급 인사라는 거야. 정말 대단하지?”
거북바위를 닮은 수승대로 발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시간이 멈춘다. 저 멀리 요수정도 시야를 막는 자태가 드러날 것이다.
“노송 가지는 묵묵히 겨울과 싸우고, 얼음 낀 계곡도 지지 않고 물소리로 호응하고…. 거북바위 사면엔 암반의 기운을 받으려는 이름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구나.”
“거북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쪽을 봐봐. 뻥 뚫린 굴이 보이니? 스승이 햇빛을 피해 여기에 앉아 후학의 글을 심사했다고 전해지지.”
수승대로 개명한 것은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때문이다. 오언율시를 전해 받은 요수 선생이 그 시의 글귀를 거북바위에 새기고 이름을 바꿨다는데, 어떤 사연일까?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속으로 상상만 늘어가누나’…. 이게 바로 오언율시인가 보군.”
“퇴계 선생이 장인 생일잔치 참석차 거창에 머물다 조정의 부름을 받고 미처 수승대를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이 시에 담은 거야.”
수승대로 개명한 것은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때문이다. 오언율시를 전해 받은 요수 선생이 그 시의 글귀를 거북바위에 새기고 이름을 바꿨다는데, 어떤 사연일까?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속으로 상상만 늘어가누나’…. 이게 바로 오언율시인가 보군.”
“퇴계 선생이 장인 생일잔치 참석차 거창에 머물다 조정의 부름을 받고 미처 수승대를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이 시에 담은 거야.”
경삼남도 거창 위천면의 황산마을에 부쩍 관심을 보이거나 찾아드는 발길들이 요즘 더욱 잦아진 듯합니다. 이는 아마도 남사예담촌에 이어 경남에서 두 번째로, 전국에서는 일곱 번째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선정돼 그 소문이 십리 밖까지 퍼져나간 게 분명합니다. 화려한 한옥촌을 기대하면서 달려간 황산마을의 고가(古家)는 되레 소박하고 심심한 쪽에 가까워 실망할 수도 있지만, 마을 역사를 품은 수승대의 비경이 더해지면 황산마을의 백미를 알게 됩니다. 마음 비우고 찾아들기 더없이 좋은 황산마을로 떠날 준비가 됐나요?
돌돌 말린 제주의 맛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푸른 바다물결이 넘실대는 제주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집약되어 있는 섬으로 보고 즐기고 맛볼 것이 풍부한 섬입니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고 있는데요. 제주는 대표적으로 알려진 곳들도 아름답지만 제주의 소소한 맛과 멋을 간직한 곳들도 꽤 아름답습니다. 제주도를 좀 더 특별하고 소소하게 즐기고 싶다면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미션은 ‘돌돌 말린 빙떡으로 제주를 맛보고 오라’ 입니다.
메밀가루 반죽에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 빙떡은 옛 제주목에서는 빙철에 지진다 하여 빙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빙떡 말고도 불리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는데?
“이번에는 뭔가 다른 제주도를 보여주겠다더니, 그게 빙떡이야? 그런데 이름이 독특하다.”
“옛날 제주에서는 빙철에 지진다고 해서 빙떡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정의현 남원 지역에서는 모양따라 '멍석떡', 작은 제사에서 약식으로 제물을 차릴 때 쓴다 하여 '홀아비떡', 서귀포 지역에서는 '전기떡'혹은 '쟁기떡'으로라도 불린다고 해.”
보기에는 평범하고 심심해보이지만 이래봬도 어엿한 제주 최고의 향토음식으로 많은 이들이 맛보고 가는 별미 중에 별미다. 맛을 보면 그 자부심이 느껴질걸?
“엄청 대단한 걸 보여줄 것처럼 하더니 겨우 빙떡이야? 호떡은 들어봤어도 빙떡은 처음인데?”
“실망한 눈치인데? 이래봬도 빙떡이 제주시의 오랜 향토음식이라니까? 제주에 오면 꼭 한번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고. 그래야 제주의 전통문화도 알 수 있지.”
고급음식점보다는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에서 맛보는 빙떡의 맛이 일품이다. 투박한 손으로 막 부쳐낸 빙떡은 재래시장의 보물이 아닐까?
“그런데 빙떡 맛보러 간다더니 재래시장으로 가는 거야?” “응, 뭐니 뭐니 해도 빙떡은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에서 맛보는 것이 일품이거든."
"막 지져 낸 빙떡을 한 입 먹으면 얼마나 고소하고 따끈한지 할머니 댁에서 맛보던 맛이 난달까?” “너희 할머니 댁 서울 아니었니?”
재료가 꽤 단순해 보이는데 빙떡의 속에는 무엇이 들어가는 걸까? 자칫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 땐?
“그런데 빙떡 만드시는 것 보니까 재료가 별로 없네. 만드는 방법도 꽤 단순해보이고.”
“응, 맞아. 빙떡은 메밀가루 반죽에 채 썰어 데쳐낸 무소를 넣고 말아 돼지비계로 지진 떡이야. 요즘은 밀가루를 혼합하기도 하는데 메밀가루만 사용하면 얼마나 고소한지 몰라. 그리고 요즘엔 무소와 육류, 당근을 함께 넣기도 한다고 해.”
메밀의 고소함과 건강함으로 돌돌 말아 부담스럽지 않다. 빙떡을 보니 터키의 케밥이나 토르티아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런데 생긴 것이 꼭 케밥이나 토르티아처럼 생겼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
“응, 그러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때 제례용으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해. 최근에는 제주를 찾는 많은 외국인들도 낯설어 하지 않고 많이 찾는 다고 해. 아마 모양이 비슷해서가 아닐까?”
빙떡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싸고 맛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매력 때문이 아닐까?
“빙떡 하나 가격이 정말 싸다. 천원을 넘지 않는 가격이니 웬만한 간식보다 저렴하고 맛도 좋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거구나!”
“그래, 맞아. 저렴하면서도 건강하고 어른들은 옛날 생각이 나니까 자주 빙떡 맛보러 오신다고 해.”
빙떡을 보니 제주의 또 다른 별미가 떠오른다. 빙떡이 간식정도라면 메인요리로 제주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말고기 육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빙떡 맛보고 또 어디로 가는 거야?” “제주까지 왔는데 또 다른 향토음식도 맛봐야 하지 않겠어? 바로, 말고기 육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지.”
“잘됐다. 빙떡은 맛있지만 뭔가 배가 부르지는 않았는데.”
빙떡처럼 돼지고기가 부족하던 시절에 먹던 제주 향토음식으로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제주의 인기 별미다. 빙떡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면?
“그럼, 내일 아침은 제주의 또 다른 인기 향토음식, 몸국 어때? 최근에 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면서 제주의 최고 인기음식으로 꼽히기도 한다는데.”
“몸국? 이름이 독특하다. 제주의 향토 음식 빙떡을 맛보고 난 후라 그런지 왠지 기대되는데?”
무채 속에 메밀전병으로 감싼 빙떡은 이름만큼이나 정겹고 친숙한 맛입니다. 음식점이나 고급레스토랑보다 전통시장이나 오일장이 더 어울리고 더 맛있는 소소한 서민음식, 빙떡은 제주의 향토음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고소하고 심심한 맛이 일품인 빙떡은 제주의 향토성 짙은 맛과 투박한 정성이 깃들어 있어 더 정감이 갑니다. 제주의 알려지지 않은 속속 들이를 알고 싶고 향토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제주시 향토음식 ‘빙떡’을 맛보고 그 속에서 제주를 마음껏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능선 따라 땅끝까지
- 전라남도 해남군 -
해남을 말하면 하나같이 ‘땅끝마을’부터 내뱉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전라남도에서 이 지역을 간판스타로 만들어준 단어인 만큼 여행객 대부분이 새로운 삶의 전기를 찾고자 ‘땅끝마을’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도 이곳으로 간다면, 가학산 능선코스로 방향을 전환해보는 시도는 어떨까요? 세상과 부딪쳐 포기하고 싶다가도 남루해진 몸을 추스르게 만드는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땅끝을 어떻게 느끼는가는 오로지 당신의 몫. 그러나 <트래블아이>는 해남으로 향하는 당신께 미션을 던져봅니다. ‘가학산에서 땅끝을 만나라!’
둘러볼만한 명소가 많은 해남은 한반도의 최남단이라는 인식으로 그저 ‘먼 여행지’라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중교통만 이용해도 해남은 결코 멀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KTX 광명역에서 이렇게 접근성이 뛰어날 줄은 미처 몰랐어. ‘땅끝’만 생각하다 보니 멀게만 느껴서일지 모르겠군.”
“대부분이 그런 오해를 하지.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강남순환고속도로, 광명~수원간 고속도로, 신안산선 등 수도권에서도 최적의 접근성을 갖추고 있다는 거.”
마산면 산막리에 이르자 가학산을 배경으로 보리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에 젖어들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고향 마을의 추억을 되새겨보게 하는 마을이야.” “청자빛 투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진초록 보리밭을 보니 더 그러하군.”
“마을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야.” “그보다도, 자연과의 어울림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아.”
트레킹 중 만나는 숲속의 돌담, 여러 동의 숙소마저 정겨운 가학산자연휴양림은 황토 벽돌집부터 원숭이 가족 등 TV에 누차 방영된 바 있는 만큼 흥미가 저절로 간다.
“여기는 웰빙 숙박시설로 소문이 나면서 평일에도 숙박객이 끊이지 않는다더군.” “편백나무 산림욕장을 비롯해 가학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이용한 수영장 등도 갖추고 있다니, 가족과 함꼐 또 한 번 찾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구나.”
“맞아. 요즘 조류관 등을 설치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
매월 예약이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이곳 야영장은 막상 마주하면 실망감이 들 수도 있다. 야영시설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데?
“취사장과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은 그나마 갖추고 있는데, 데크나 샤워장은 없네. 게다가 바닥은 파쇄석으로 되어 있고 말이지. 심지어 전기시설도 사용할 수 없다는군.”
“하지만 불편하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보면 어떨까? 한편으로는 이곳이야말로 진짜 자연을 배우고 자연 속에 동화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 같지 않니?”
산세가 학이 나는 듯하다 이름 붙여진 가학산은 기암괴석과 철쭉이 조화를 이루는 명산으로 꼽힌다. 이 산을 ‘흑석산’이라고도 칭한다는데,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일까?
“비 온 후 물을 머금은 가학산 바위는 무슨 색을 띠는지 알아?” “바위가 비에 젖어봤자 또 다른 색을 띠겠어? 네 질문부터 틀렸군.”
“나도 아직 보진 못했지만, 검게 그을린 듯 보인다지.” “신기하군. 게다가 가다 보면 어느 능선에 오르면 마치 학을 타고 비상하는 듯도 하다지?”
밀렵이 판을 치는 요즘 산에서 꽃뱀 한 마리만 마주쳐도 반갑다. 가학산은 아프리카의 사파리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아직도 이곳에 원숭이가 살고 있을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예전에 여기서 나무 위에 떡하니 앉아 있는 원숭이를 봤었어. 목에 사슬도 없고 철저히 야생에 의존하는 이곳 원숭이는 일본원숭이보다 강인한 생존능력을 가진 종자일 게 분명해.”
입구를 지나 잔디밭쉼터∼학운정∼정상∼해도정∼맹선재∼물치기미쉼터까지 장장 5km의 산행코스는 주춤한 사이에도 잊지 못할 풍광을 내어준다.
“길이 갑자기 쉬워졌다고 빨리 걷는 건 지양해야 해. 천천히 걷는 길에서는 그만큼의 볼거리가 가학산에서는 분명 있을 테니까.”
“정말이네! 꼬불꼬불 예쁜 오솔길이 오롯이 나 있어.” “하하~ 완만한 이 길은 마치 우리에게 쉬엄쉬엄 가라며 배려하는 것 같지?”
맹선재를 지나면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그 뒤에는 곧 시야가 확 터지며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정상이 금방이다. 막판 스퍼트를 내보자!
“이 능선길 코스 가장 끄트머리에서 어떤 경관을 보게 될까 그 생각만 하면서 왔는데, 고생 끝에 이런 천혜의 낙원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저기가 소안도지? 저쪽에 보길도랑 노화도까지 전부 보여! 해남의 진정한 묘미로세!” “쾌청한 날씨에는 멀리 제주도까지 보인다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날씨가 꾸물꾸물하구먼.”
가학산 능선길을 따라가다 보면 완전한 장구 모양의 잘록한 허리를 가진 소안도를 비롯해 보길도와 노화도를 연결하는 보길대교의 장난감 걸린 듯한 모습까지 보게 됩니다. 땅끝의 진면모를 느끼고 싶다면 가학산으로 향하라고 이야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흑석의 위용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철쭉과 오솔길의 매력을 모두 품은 능선코스를 직접 밟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오롯이 품은 가학산에서 여러분이 만난 해남의 땅끝은 어땠나요?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 서울특별시 송파구 -
이탈리아의 폼페이 유적지는 잘 알아도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 수천 년 전 유물이 고스란히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이곳이 88서울올림픽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는 점도 물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계평화의 문을 지나 아름다운 몽촌호수를 만나면 그 역사는 무려 1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송파구의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군 모두 한성백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네 소중한 보물입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바로 ‘한국의 폼페이 한성백제 왕궁터를 찾아라!’입니다!
아파트와 주택이 빽빽이 들어선 풍납동 땅 아래에는 지금도 수많은 백제 유물들이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 한성백제 유적지가 표시된 지도만으로 보물찾기가 가능할까?
“유물을 발굴 할 때는 조심조심 파야 해요. 유물을 찾으면 꼭 모눈종이에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보자!”
“앗! 여기요, 여기! 지금 막 토기가 나왔어요.” “음, 글쎄. 그건 그냥 도자기그릇 조각 같구나. 봐봐. 공정과정에서 새긴 글씨가 선명하지?"
한성백제박물관에는 풍납토성 일부를 그대로 잘라 옮겨놓은 토성 절개면을 전시해 놓고 있다. 당대 백제인의 축조기술은 어떠했을까?
“백제의 첫 왕성이에요. 현재는 2km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평지에 쌓은 토성 가운데가히 세계적인 규모라 할 수 있죠. 당시 백제의 국력의 위대함이 느껴지니?”
“네! 시루떡처럼 층층이 다져 쌓은 판축법, 나뭇잎 등을 깐 부엽법 등 백제사람들 손재주도 참 뛰어났던 것 같아요!”
경당연립이 있던 자리는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궁터임을 입증하는 중요 유물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말 머리뼈, 우물, 창고, 대부(大夫)라는 한자가 새겨진 목 짧은 항아리까지… 이게 다 어디에 쓰였을까요?”
“제사 지낼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지. 왕들의 역할이었는데 그래서 이곳을 사당 역할을 겸하는 왕궁터로 보는 거야.”
고대백제의 500년 도읍지였던 송파는 여전히 웅혼한 백제의 기상과 빛나던 문화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근데, ‘한성백제’라 일컫는 기준은 뭘까?
“어쩔 때는 ‘고대백제’, 어쩔 땐 ‘한성백제’라고 하는데, 왜 그렇죠?”
“고구려 시조 주몽의 두 아들 온조와 비류는 큰 꿈을 안고 남하해 지금의 서울 북부지역에 이르렀을 때가 약 2000년 전. 기원전 5년 온조가 송파 지역으로 천도해서부터 문주왕 원년까지 송파가 백제 수도로 문명을 꽃피운 시기를 ‘한성백제’라고 했다는 주장이 있지.”
그러나 많은 천도 기록과 여러 가지 지명은 한성백제 수도 실체를 놓고 큰 혼란을 야기한다. 그래서 한성이라는 명칭도 아직은 논란거리. 왕궁성이라는 풍납토성은 어떨까?
“한강 유역을 차지한 고구려가 평지성인 풍납토성은 폐기하는 대신 산성인 몽촌토성을 군사용으로 재활용하면서 한산성, 즉 한성은 점차 백제 고도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부상했다는 기록에서 ‘한성’의 기원은 사실 아직 뚜렷한 정답은 알 수가 없지.”
“풍납토성은요? 축조에 연인원 100만명이 넘었다는 점에서 왕성이라고 봐도 될까요?”
서울에서 열리는 축제 가운데 유일하게 문화관광축제의 영예를 안고 있는 축제가 바로 송파에서 열린다고 한다. 어떤 축제일까?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답게 조선시대 문화유적이 적잖이 남아 있는 서울에서 송파는 독특한 위상을 점하지. 바로 1,500여 년 전까지 존속한 백제 한성시대의 도읍지였다는 점이야.”
“그래서 송파가 그 못지않게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고도라고 말들을 하는군요!” “그렇지. 그렇다면 이와 연관된 축제도 유명한데, 뭔지 알 수 있겠니?”
500년 한성백제시대의 찬연했던 역사문화의 발자취를 재현한 전통문화축제 현장, 그 속에는 어떤 참신한 내용들로 꾸며져 있을까?
“근초고왕 열병식, 근초고왕 개선행렬 등 역사문화행사도 너무나 흥미로워요!”
“전통과 미래를 잇는 축제이니만큼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쳤지. 그렇게 역사성을 강조한 교육적인 프로그램들도 많지만, 즐거움이 가미된 그야말로 축제다운 축제들도 많단다.” “백제마을 체험이나 혼불채화, 단심줄 대동놀이 같은 것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풍납리 일대, 특히 경당 역사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유물 발굴체험은 흔치 않은 기회라 더 특별하다. 한성백제 왕궁터의 진짜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포기! 하지만, 책에서만 봤던 유물 발굴을 직접 해보니 꽤 인상적이에요. 500년간 지속된 한성백제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알고 돌아갈 수 있어 너무 뿌듯해요!”
“사실 백제 왕궁이 있었던 풍납토성은 세계적인 규모의 토성이야. 세계적인 관광지 폼페이처럼 풍납토성 일대도 매력적인 관광지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들지 않니?”
고대백제의 500년 도읍지였던 송파구에는 여전히 백제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그 당시 웅혼한 백제의 기상과 빛나던 문화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특히 백제 초기 왕도를 구성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핵심 성터로 남아 있습니다. 고대백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면 송파구를 둘러보는 시간도 상당히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역사의 향기에 정서적, 지적 욕구를 함께 충족시켜보고 싶다면 이번 주말은 송파구로 나가보는 건 어떠세요?
느림, 비움, 그리고 채움
- 경상남도 하동군 -
찻잔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차명상입니다. 5~10분이면 가능한 차명상은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더없이 좋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차를 접하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휴식이 있어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흩날리는 벚꽃 아래를 거닐면 녹차 향이 더 은은하게 피어나는 경남 하동에서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키운 순수자연 야생차가 화개면 야산에 가득합니다. <트래블아이>오늘 미션은 바로 ‘나에게 비움을 선물하라!’입니다.
‘신선이 사는 항아리 속 별천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화개면은 많은 명사들의 시속에서도 애칭으로 많이 회자됐다. 가장 처음 등장하게 된 시초는 언제였을까?
“아닌 게 아니라 ‘꽃 피는 곳’ 화개동천은 계절마다 꽃의 향연이로세. 이른 봄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시작으로 녹차 꽃이 광활한 야생차밭을 수놓아 일 년 내내 꽃이 질 날이 없으니까.”
“맞아. 하동의 화개면은 최치원 선생의 ‘화개동천(花開洞天)’에서 처음일까?” “혹시 이곳의 차와 인연이 깊은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에 대해 알고 있니?”
본격적인 녹차시즌이 되면 화개면에서는 다도교육과 함께 지역의 오랜 전통인 ‘덖음’ 기술을 여행객들에게 전수해주고 있어 호응도가 높다. 어떤 기술일까?
“야생 차밭에서 수확한 찻잎을 300℃ 무쇠 솥에서 직접 덖고 비벼 수제 녹차를 만드는 과정, 이렇게 전통수제다법으로 덖음차를 만들고 은은한 차향도 즐기니 정말 특별한데?”
“정말 그래! 녹차를 직접 만들고 다례를 직접 체험하면서 왠지 몸이 정갈해지는 것 같아. 숨 막히는 도시의 일상을 떠나 녹차 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좋은 기회야.”
차를 따르고 마지막에 떨어지는 차 방울. 내 몸의 신호에 관심을 갖는 데 차만 한 것이 없다. 다도체험을 통해 심신을 휴식하고 느림의 미학을 느껴 보는 건 어떨까?
“느릿느릿 우러나는 다채로운 색과 향내를 만끽하면서 하루의 쉼표를 찍는 습관의 중요성을 느끼게 돼. 내 몸의 신호에 관심을 갖는 데 차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아.”
“정말 그래. 차를 따르고 마지막에 떨어지는 차 방울, 내 몸에 맞는 차 한 잔을 통해 마음은 쉬어 갈 수 있고, 몸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화개마을에 오면 ‘행다(行茶)법’을 배울 수 있다. 차 끓이는 법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꼭 엽차만을 끓여 내는 것이 아닌 차를 내는 행위인데, 어떤 예절일까?
“전통적인 방법은 다관을 비롯해서 물 식힘 사발, 개수 그릇 등은 오른쪽에, 찻잔과 잔 받침, 차통, 차숟갈 등은 왼쪽에 배열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다구를 놓는 자리는 팽주가 움직이기에 편리하고 동선이 짧으니 보기에 좋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배치하는 거로군요! 그러면 다반은 본상 왼쪽에 두나요?”
천년이 넘게 자란 녹차나무에서 딴 잎으로 만든 녹차를 시음해보고 싶다면 내가 만든 찻사발에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진교면 백련리 백련리도요지로 가보자.
“도요지로 유명한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은 우수한 흙이 생산돼 가야시대 토기문화를 꽃피웠고 조선 중엽부터 남부 최대 서민 도자기 촌으로 명성을 간직하고 있지.”
“와~ 이곳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이도다완(井互茶碗)발원지로 알려진 곳이구나! 매암차박물관에서 시대별 다구와 제다법을 미리 배우지 못했다면 어쩔 뻔했어!”
김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 씨앗을 들여와 처음 재배를 시작한 하동에는 수령이 천년 이상 된 차나무에 하동녹차의 역사가 숨어 있다는데,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까?
“화개장터 입구에서부터 쌍계사를 지나 신흥까지 장장 12km의 산야에 야생차밭이 조성돼 그 자체로 비경을 이루는구나! 가만, 이 고목이 바로 천년도 더 됐다는 차나무인가? 크기가 4m는 훨씬 넘겠어!”
“맞아. 현재 이 차나무에서는 매우 적은 양이지만 여전히 찻잎을 수확하고 있다지?”
찻잎을 우려 만든 각종 다식과 음식도 맛볼 수 있어 더 없이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화개면이다. 어떤 음식들이 우리의 식감을 자극할까?
“차잎은 약간의 물을 가해 불리고, 물기를 꼭 짜서 소금과 참기름으로 삼삼하게 간해 무치는 차감자전부터 차구절판, 차인절미말이, 차버무리떡까지 난생 처음 보는 다식들을 모두 맛볼 수 있다니! 임금님 수라가 부럽지 않아!”
“어디 그뿐일까! 차죽과 차두부는 정말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귀한 음식이라고!”
임금님께 진상돼 ‘왕의 녹차’ 하동녹차가 보성 설록차와 또 다른 최고의 명차로 우뚝 서게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차 향기에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니? 야생차문화축제, 녹차연구소, 차문화센터 등 우리나라 차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다도인들은 무엇보다 하동녹차를 귀히 여기고 있어.”
“맞아. 지리산이 품고 섬진강과 바다가 감싸 안아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고 안개가 풍부 해 녹차가 자라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지리산 자락의 신선한 햇볕과 이슬을 머금고 자란 하동의 야생찻잎은 맛과 품질 면에서 뛰어납니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덖음’ 기술로 최고의 명품 차를 탄생시켜 ‘왕의 녹차’라는 별칭에 걸맞게 야생차의 진수를 맛보게 해줍니다. 차가 가지고 있는 정적인 이미지와 하동이 갖는 여유와 휴식의 이미지는 이 다도의 ‘비움’에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동이 가장 빛을 발하는 봄, 녹색 차밭의 비경과 십리 벚꽃길,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함께하는 화개면에서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차와 자연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고고한 역사의 동네 변천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
사대문을 감싸 안은 옛 성곽 아래, 부채꼴 모양으로 내려 앉아 서울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성북동 일대는 언덕 위로 대저택들이 많아 ‘서울부촌’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1960년대 이전만 해도 대표적인 서민 주택가였습니다. 가난한 작가, 화가 등 많은 예술인들이 일제부터 이곳에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오래됐지만 바래지 않았고, 소박하지만 부유한 부촌1번지 성북동에는 이야깃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고고함이 묻어나는 성복동의 옛이야기를 들어라!’
예부터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바위들이 어울린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마을 성북동은 지금도 서울에 있지만 서울 같지 않다.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조용한 산동네에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아직 플라스틱 굴뚝에서 피어나는 흰 연기, 오래된 한옥과 작은 골목, 비탈에는 덧니처럼 흐트러진 돌계단. 돌담에 놓인 노란색 양철통. 오래된 대폿집까지, 시간 속을 거슬러 올라가 이내 또 다른 성북동의 얼굴을 마주한 듯해.”
“맞아.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기억에도 없는 추억에 젖어든다니까.”
잘 보존된 고택과 미술관, 옛 선인들의 보금자리를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속 ‘성북동 사모님’도 울고 갈 부자는 따로 있는 듯하다. 성북동을 성북동답게 하는 명소를 찾아보자.
“일찍이 우리나라 고미술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알아보았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 현재 보수공사(2013년 9월1일 ~ 11월30일) 중이라 관람은 어려운 상태구나.”
“어떤 모습으로 일반에 공개될지 무척 기대돼. 최순우 옛집은 전통가옥의 모습에 충실하고 있다는데, 재개발의 풍파에 휩쓸려 하마터면 헐릴 뻔한 이 집을 시민들이 지켜냈다지?”
고택과 성당, 미술관이며 골목골목 숨은 찻집, 밥집까지 모두 헤아려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출발 전, 어떻게 해야 동선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가져갈 수 있을까?
“선잠단지길로 100m도 채 가기 전에 작은 교통섬이 나오다니. 잠깐, 우연찭게 저기 골목을 들여다보니 북정미술관이 위치해 있는 걸 발견했어!”
“이거 잘못했으면 ‘동양의 피카소’를 놓칠 뻔했군 그래! 행여나 또 이런 좋은 구경거리 놓칠까 봐 슬슬 불안해지는데? 구청에서 그림지도나 안내책자라도 챙겨올 걸 그랬지.”
성북동길을 따라 성북초등학교 옆길까지 10분여를 걷노라면 오롯한 홍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살진 누에고치와 좋은 실을 기원하던 선잠단지의 또 다른 옛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종 때 선잠례를 지냈지만 1908년 제사 장소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지금은 터만 남아 있어. 하늘높이 솟은 뽕나무는 아직도 여전한데 말이야.”
“여느 양반집 아낙을 기리는 열녀문이 있었다는데, 새삼 이 안이 궁금하지 않아? 문은 잠겨있지만 인근 주민에게 부탁하면 열어줄지 혹시 알아?”
안암동 개운사의 암자인 보타사 대웅전 뒤쪽 화강암 암벽에는 고려시대 마애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거대한 보살상 어깨를 보면 숨은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데?
“웅대한 이 불상을 봐. 얼굴 생김새부터 토실토실한 게 미감이 풍부한 표정을 하고 있어.”
“최근에 온몸을 흰색으로 칠해서 백불의 인상을 풍기고 있군. 그런데, 이 마애불 어깨 쪽 좌우에 홈이 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불상을 보호하던 전각이 있지 않았을까? 이 아래 새긴 명문은 뭘 뜻할까?”
성북동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찻집도 고풍스럽고 계곡 주변에 자리 잡은 성북동쉼터에는 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도 그 나름의 멋이 있다. 건너편에는 또 어떤 멋들이 있을까?
“여기 좀 봐. 성북동쉼터 너머에 이런 곳이 자리해 있었다니. 한복 보자기 등 손으로 마법을 빚는다는, 숱한 주부들 기를 죽인다는 그 ‘효재’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참선수양을 할 수 있는 ‘침묵의 방’도 일반에 공개하고 있구나.”
“정말이네. 울긋불긋 담쟁이가 돋보이는 새하얀 담장이 특히 매력적이야.”
길상사를 나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택으로 향하다 보면 비둘기 조형물과 함께 한쪽 벽면에 소설 <성북동 비둘기> 현판이 위치한 비둘기공원이 또 한 번 발길을 잡는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름 모를 잡초가 왠지 쓸쓸해 보여.”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집들과 동네를 비집고 들어선 100평짜리 저택들, 골목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는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읊조리겠지?”
좁은 골목길은 제법 가파르다. 숨이 턱에 찰 즈음 한용운 선생이 말년을 보냈다는 심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옥이 일반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북향이어서 관심이 더 간다.
“마당 너머 한 눈에 들어오는 성북동 전경도 좋은 볼거리로구나. 낮은 지붕이 마주칠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주변의 작은 집들이 멀리 산자락의 대관저들과 상반돼 더 특이하다.”
“그렇구나. 마당의 향나무는 만해가 손수 심었다지. 그런데, 만해는 무엇이 보기 싫어서 산비탈로 방향을 틀어서 집을 지었을까?”
명망 있는 재벌가 대사관저가 몰려있어 ‘부자들의 동네’로 이름난 성북동은 한 걸음 더 들어서면 옛 선인의 발자취가 그대로 녹아 있는 동네였습니다. 조선의 도읍 한양을 지키던 서울성곽에 고종의 다섯째 아들의 별채가 있고 만해 한용운의 기개가 돋보이는 한옥과 요정정치 산실에서 급변신한 문화 종교시설, 민간모금운동으로 지켜낸 시민문화유산 1호까지. 사실 성북동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려면 4~5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기왕 마음먹은 여행, 넉넉하게 한나절 할애해보는 건 어떨까요?
경남 남해 속의 작은 나라
- 경상남도 남해군 -
경남 남해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해양생태관광 등의 관광도시로 유명합니다. 해바리 마을, 내산 꽃 단지, 죽방렴 등 여러 명물과 체험 마을이 가득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특색 있는 곳을 꼽으라면 ‘경남 남해 속의 작은 나라’ 독일마을과 미국마을이 있습니다. 시골농촌마을 대신 자리하고 있는 이들 외국인마을은 그야말로 동화속 세상을 품고 언제든 찾는 이들의 시선과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여권 없이 해외여행하기’입니다.
독일마을이라고 쓰여 진 커다란 표지석 뒤로 보이는 신기한 마을이 있다. 독일 깃발이 펄럭이는 이 곳. 정말 외국에 온 것은 아닐까?
“와, 태극기과 독일의 국기가 함께 걸려있어. 산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모습이 꼭 그곳을 향해 오라며 손짓 하는 것 같아.”
“해외에 온 듯한 기분이 이렇게 선명하게 들다니. 꼭 공항에 들러 여권에 도장이라도 받아와야 할 것만 같아.”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지붕, 티끌 없이 하얗게 칠해진 건물 외벽까지. 우리나라 산에 있는 건물이 맞는 것일까? 이국적인 분위기가 끝이 없다.
“독일에서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한국적인 느낌이 있을 줄 알았는데, 건물마저 외국 느낌이라니 조금 낯설어.”
“하지만 그 곳에서 살아간 문화를 모두 벗어날 수는 없으니, 이곳의 모두가 공동체가 되어 다시금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대체로 민박을 운영하고 있는 독일마을의 사람들. 그러다보니 민박지도 한 장을 들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독일마을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의 TV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에 노출되면서 그 유명세가 한층 더 올라갔다고 해.”
“맞아. 촬영 명소로도 유명하고, 그 속에서 나왔던 명장면을 따라 연출해보는 것도 이 곳의 새로운 관광문화가 되었데.”
독일의 명물 하면 역시 맥주. 독일 맥주 축제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한국에서 먹는 진짜 정통 독일 맥주는 어떤 맛일까?
“옥토버 페스트? 독일 서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축제이잖아! 와, 우리나라에서 작지만 그런 축제를 맛볼 수 있다니 놀라워!”
“축제를 재현해낸 것뿐만이 아니야. 독일 맥주, 소시지 등을 제공하고 공연 등의 볼거리 행사도 제공한다지. 멀리 가지 않고도 독일 축제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겠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이 마을은 한층 더 이국스럽다. 화려한 저택들이 찾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야~ 원예 전문가들이 꾸민 정원이라 그런지 정말 독특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맞아. 스페인풍의 조각정원을 비롯해서 네덜란드 풍의 풍차정원, 핀란드 풍의 스파정원 등 원예인들이 조성하고, 또 그들이 직접 살면서 가꾸고 있다고 해.”
“게다가, 공공정원과 전시장, 기념품 점 까지! 정말 관광지로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미국 교포들이 건강한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동시에 관광지로도 개발 된 미국마을. 독일마을과는 또 다른 신비로움을 가졌다.
“저기 봐, 미국의 대표 랜드마크인 자유의 여신상이야. 조금 작고 어설픈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더 재미있는 것 같은데?”
“다들 자유의 여신상이 되어서 팔을 들어 올리고 사진을 찍고 있어. 미국마을 최고의 명소가 아닐까?”
미국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 살아온 듯이, 미국의 한 마을을 그대로 떼어다 옮겨놓은 풍경이다. 영화 속에 나오던 바로 그 모습이다.
“잘 정비된 가로수 길과 우리나라 문화와는 다른 주차풍경, 또 집의 모양 까지도 정말 미국에 온 것 같아. 꼭 영화 속 주인공들이 지나다닐 것만 같아.”
“개인이 살고 있는 집도 있지만, 미국마을은 펜션으로 운영되고 있는 집들이 더 많다고 해. 바다를 앞에 두고 있으니 이곳에 숙소를 잡아도 좋지 않을까?”
여권도 없이 나선 여행에서 이국적인 감성을 느낀다는 것. 그 색다른 힘이 더해져 이 곳, 남해의 작은 나라의 의미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외국을 경험하는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 사람이 살지 않는 테마 관광지의 인위적인 느낌이 적은 곳인 것 같아.”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교포들을 위해 처음 조성된 곳들이지만, 그 특색은 관광지로서의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경상남도 남해 속 이 작은 나라들은 그저 박물관이나 전시장이 아니라, 모두 사람이 살고 있는 실제 마을입니다.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조성되었고 숙박시설과 관광지가 연계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가면 사람이 사는 냄새를 맡으며 실제 해외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습니다. 해외여행을 떠나기에 조금 벅찬 감이 있다면 이곳으로 ‘여권 없는 해외여행’ 한번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이국적인 남해의 모습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생길지도 모르니 마음 굳게 먹고 말이죠.
역사를 산책하는 공주 여행
- 충청남도 공주시 -
고마나루는 공주를 말합니다. 고마나루명승길은 공주의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공간입니다. 무령왕릉이 있는 고분군을 걸으며 웅진백제시대로 거슬러 갔다가도 연미산 정산에서는 공주의 도심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과거든 현재든 공주 산천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해서 이름도 명승길입니다. 그렇게 고마나루에서 시작해 공주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23km에 걸친 이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백제시대로 접어듭니다. ‘고대 역사를 더듬어 가는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라!’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백제시절 서해에서 올라온 배나 금강 상류를 오가던 배가 드나들던 넓은 나루터 고마나루다. 강변으로 내려가면 곰 가족이 살던 연미산이 나온다.
“돌로 깎은 작은 곰 상을 모신 사당 주변으로 키 큰 소나무들이 우거져 보기 좋구나. 솔숲 사이사이 현대 작가들이 만든 곰 가족상도 있다지?” “웅진단? 여긴 뭐죠?”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국가가 주관하여 금강에 수신제를 지내던 터란다.”
생김새가 제비꼬리를 닮았다 하여 유래한 이름 연미산. 이곳에서 고마나루명승길의 전체 코스는 물론 공주의 도심이 한눈에 조망된다.
“저 금강을 좀 봐라. 서쪽으로 흐르다가 연미산에 부딪혀 남서쪽으로 급히 휘어 돌아가는 모습이 참 장관이지? 금강 건너편에서 공주의 구도심과 신도심을 한눈에 보이는구나!”
“주변으로는 소나무들이 시원하게 뻗어 있어 참 좋아요. 저 소나무숲 사이로 가다보면 현대 작가들이 만든 곰 가족 조각상도 나온다고 쓰여 있어요!”
고마나루에서 1~2km만 걸어가면 웅진시대로 데려가 줄 송산리 고분군이 나온다. 짧은 거리지만 중간중간 산길에, 내내 오르막이라 시간은 충분히 생각하고 걷는 게 좋다.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의 밝혀진 무령왕릉을 비롯해 고분 7기가 모여 있어. 발굴과 함께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유물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왔지.”
“무령왕 외에는 다른 왕의 무덤은 확인되지 않고 있네요. 삼국을 호령한 신라의 도읍 경주에도 없던 왕릉이 여기에는 있다는 사실도 놀라워요!”
전국의 약재상들이 몰려들었던 산성시장을 통과하면 길은 다시 백제의 왕성 공산성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웅진과 공주, 백제시대와 현대를 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538년 성왕이 사비로 옮길 때까지 64년간 5대에 걸친 백제왕들이 공산성 안 왕궁에서 거주했을 거야. 당시에는 웅진성이라 했지. 산세를 따라서 작은 성을 쌓고 강을 해자로 삼아, 지역은 좁지만 형세는 참 견고하지?”
“네.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주 출입문이 바로 서문에 해당하는 금서루로군요!”
공산성은 웅진 백제의 64년간 왕성이었던 곳. 성벽은 2.6km로 한 바퀴 둘러보는 데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 공산성 안에서 백제를 비롯해 통일신라, 조선시대의 유적들까지 전부 만나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이 산성은 원래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지.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친 거야. 아마 지금의 이 산성 자리보다 왕성의 적임지는 또 없었을걸.”
공북루 위쪽 전망대에 오르면 푸른 금강과 공주 시내 전망이 시원하다. 해가 지고 조명이 들어오면 이곳에서 공산성의 밤 풍광을 보는 것도 좋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겨움이 느껴지는 공주 야경과 금강 위에 걸린 철교, 성벽을 비추는 조명이 시원한 밤공기와 어울려 기분이 좋구나.”
“저는 하루가 너무 짧아 많이 아쉬워요. 금서루에서 웅진수문병교대식을 보고 나니 백제 의상 입어보기, 활쏘기, 백제 왕관 만들기, 백제 탈 그리기 등 체험도 모두 해보고 싶었어요.”
송산리고분군 입구 공예품전시관과 관광객 쉼터에서 밤으로 만든 과자, 알밤막걸리 등 주전부리로 적당한 지역특산물을 판매한다. 특히 이곳 웅진백제역사관도 들러볼 것.
“공주한옥마을에서 하룻밤 묵고 가요! 아직 국립공주박물관과 동학사 입구의 계룡산자연사박물관도 가보지 못했잖아요. 동학사는 올라가는 길에 절로 삼림욕이 된대요, 네?”
“정말 그럴까? 나는 공주한옥마을이 왠지 끌리네! 한옥 고유의 멋을 간직하면서도 내부 시설은 편리하게 갖춰놓아 다녀온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하더구나.”
공주는 북쪽으로는 천안시와 아산시, 동쪽으로는 대전시가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청양군과 부여군이 잇닿아 있어 어디로 가든 부담스럽지 않은 위치입니다. 하지만 고마나루명승길은 평지로 난 길이지만 볼거리가 넘쳐 조금 빠른 걸음으로 둘러봐야 하기에 다소 압박감도 있을 겁니다. 특히 고대 성곽인 공산성은 유적도 많지만 금강을 굽어보는 풍광 또한 호쾌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공산성을 나와서도 다양한 박물관 등이 명승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으니 하루 더 묵고 가지 않을 수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