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엔들 잊힐리야.’ 시인 정지용을 만나는 고장, 옥천에서의 나른한 여행길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잔뜩 업혀 있는 고장, 고장들. 때문에 트래블피플이 여행지로 택한 고장들에서는 항상, 몇 걸음을 양보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마련이다. 본고의 주인공이 될 고장, 충청북도 옥천군의 경우도 그렇다. 옥천군은 부소담악과 둔주봉, 용암사, 장령산자연휴양림 등의 이름난 명소들을 보유하고 있는 고장. 그리고 시인 정지용의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고장이다.
걸음마다 시인을 만날까, 향수가 가득한 옥천
옥천은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소개되곤 한다. 그리고 이 고향이라는 표현은 물론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이 시는 시 그 자체로, 곡을 붙여 만든 노래로, 수많은 매체에서의 인용과 변주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
이 시는 시인 정지용이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로, 그 고향이 바로 충북 옥천군이다. 시를 가만히 읊고만 있어도 평온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 절로 그려지니, 옥천이라는 고장에 대한 이미지는 향수로 가득하다. 옥천군의 슬로건인 ‘your 옥천’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옥천군에 대한 공통된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 옥천의 풍경 속을 가만히 걷고 있자면, 실개천들이 옛 이야기를 지줄대고 있는 듯, 얼룩백이 황소가 우는 금빛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묘한 감상에 사로잡히게 되니 이 특별한 감상이 바로 숱한 이들이 옥천엘 다녀가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시인 정지용은 190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습작을 시작해, 1922년 <풍랑몽>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을 걷게 된 정지용은 여러 문학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이화여전 교수, 경향신문 주간 등을 역임하며 틈틈이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북한 인민군에 의해 납북되어 그 해 9월 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작가로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대표작인 ‘향수’를 비롯해 약 120편의 작품을 남겼다.
어쩌면 트래블피플이 옥천에서 걸었던, 혹은 앞으로 걸어 나갈 그 길이 백여 년 전 시인 정지용이 걷던 그 길 위일지도 모를 노릇. <향수>를 사랑한다면, 고향에 온 것만 같은 정겨운 감성에 벅찬 마음을 안아보고 싶다면 옥천으로 떠나 보자. 걸음마다 시인을 만날 듯 설렌 마음 위로 따스한 추억들이 피어나게 될 테니 말이다.
정지용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 정지용문학관과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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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에는 시인 정지용과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으니, 이곳에를 들러 간다면 시인 정지용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시인 정지용의 모습.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고 벤치에 앉아 있는 모형은 마치 실물과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시인이 앉은 자리 옆으로는 자리가 비어 있으니 슬쩍 시인 옆에 앉았다 가는 것 또한 트래블피플의 감성 넘치는 여행에 추억 한 조각을 더해 줄 것.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을 따라, 우측으로 난 어두운 입구로 들어서면 전시실이 시작된다. 서정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정지용의 시 세계를 그에 어울리는 음악과 이미지로 전달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시인 정지용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는 문학전시실이 펼쳐진다. 문학전시실은 테마 별로 지용연보, 지용의 삶과 문학, 지용문학지도, 시ㆍ산문집 초간본 전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문학체험 공간이다. 다채로운 멀티미디어 기법을 활용해 관람객이 문학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스크린 위에 손을 내밀어 시어를 읽으면서 느껴보는 ‘손으로 느끼는 시’부터 음악과 영상과 함께 시를 느낄 수 있는 ‘영상시화’, 배경음악 위로 정지용 시인의 시를 직접 낭송해 보는 ‘시낭송 체험’ 등 정지용의 문학을 오감을 활용해 체험할 수 있다.
문학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정지용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사철 발 벗은 아내’가 금방이라도 정겨운 웃음을 지어 올 것만 같은 이 초가집 또한 흐릿해진 기억 속의 고향집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이리도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정지용생가에서 또한 <향수>의 한 구절이 절로 머릿속을 스치니 반가운 일이다.
옥천의 곳곳, 정지용의 흔적이 스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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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을 여행하는 중에는 그야말로 ‘곳곳’에서 시인 정지용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조금 전 이야기했던 정지용문학관과 정지용생가가 위치한 길은 ‘향수길’일원이며, 향수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지용로’가 이어진다. 향수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 정지용의 흔적들을 그득히 만날 수 있으니, 이를 참고하여 여행해 보는 것도 좋겠다.(향수길은 30리 길, 100리 길, 200리 길, 300리 길 등 난이도와 거리 별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나 옥천의 이름난 명소 중 한 곳인 장계관광지는 정지용의 흔적들을 집대성해 둔 곳이라 볼 수 있는데, 지용문학상 시비와 정지용 시 조형물, 정지용의 시를 테마로 한 벽화와 정지용문학상의 수상작 등을 폭 넓게 만나볼 수 있으니, 문학을 사랑하는 트래블피플이라면 한 번쯤 들러봄직한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장계관광지 내에는 그 외에도 옥천향토전시관, 청마리제신탑의 모형, 복원된 청석교 등 옥천이라는 고장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풍부한 관광자원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이 또한 빼 놓지 말고 둘러보도록 하자.) 벤치 하나에도 시구가 자리하고 있으니, 장계관광지에서라면 그야말로 ‘향수가 가득한’ 여행을 꾸려 볼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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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이 나고 자란 고장인 옥천에서는 매년 ‘지용제’가 열리기도 한다. ‘시인 정지용의 고향 옥천의 문학축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축제이기는 하나, 지용제는 옥천이란 고장을 말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축제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마치 고향에 대한 이미지의 총 집합과 같은 모습. 황소를 한 어린애, 갓난쟁이를 업고 소쿠리를 머리에 인 아낙의 모습 등의 모형을 만나볼 수 있음은 물론, 옥천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도, 전통놀이를 즐겨 볼 수도 있다.
시인 정지용의 모습을 본떠 만든 탈을 쓴 이들이 분위기를 돋우고, 트랙터를 타고 향수길을 돌아볼 수도 있다. ‘7080 향수 음악다방’, ‘향수 전국 사진 공모전’ 등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 축제는 매년 5월, 정지용문학관과 생가 일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5월에 옥천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향수 속으로의 여행’길을 걸을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나른함’, ‘정겨움’, ‘포근함’. 옥천을 가장 잘 수식할 수 있는 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트래블아이는 항상 트래블피플의 생각이 궁금하답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1년 08월 18 일자